디지털 노마드

정선,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조용한 피난처가 될 수 있을까?

newstart137 2025. 7. 8. 22:22

서울을 떠나 정선을 찾은 이유: ‘조용함’이 필요했던 순간

도심의 속도에 맞춰 일하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친다. 나는 8년째 콘텐츠 기획과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프리랜서로 해오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노트북 앞에서 보내는 만큼, 어디에서 일하든 큰 제약은 없었다. 문제는 ‘공간’이었다. 정신없이 바쁜 강남의 카페, 창문 하나 없는 오피스텔, 좁고 시끄러운 거리. 점차 일의 효율은 떨어지고, 자존감도 함께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문득, 도시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지도를 펼쳐 ‘가장 조용해 보이는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조용한 피난처 정선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강원도 정선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선은 정선 5일장, 아리랑 열차, 혹은 강원랜드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엔 다르게 보였다. 관광객이 몰리는 시즌을 피해 조용한 읍내나 외곽으로 들어가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가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디지털 노마드로서 한 달간 이곳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정선의 인터넷과 작업환경, 과연 괜찮을까?

정선이라는 이름은 왠지 ‘인터넷 속도 느린 곳’, ‘외진 시골’이라는 이미지로 연결되기 쉽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런 걱정을 안고 출발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본 정선의 인터넷 환경은 놀랍도록 안정적이었다. 내가 머문 숙소는 정선읍 중심지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의 민박 형태 주택이었다. 통신사는 KT였고, 측정 결과 다운로드 270Mbps, 업로드 240Mbps 정도로 대부분의 원격업무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숙소 내부에 작은 테이블과 나무의자가 있었지만 장시간 앉기에는 불편해, 나는 근처 카페나 도서관을 활용했다. 정선군립도서관은 노트북 사용이 가능하고 전기 콘센트도 마련되어 있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평일에는 이용자가 거의 없어 나만의 작업실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또, '카페 느루', '정암사 입구 근처 찻집' 등 조용한 로컬 카페도 분위기와 작업 효율 면에서 기대 이상이었다. 프리랜서나 디지털 노마드에게 필요한 건 고급 오피스가 아니다. 조용하고 방해받지 않으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면 된다. 정선은 그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일하고 쉬는 삶: 정선에서만 가능한 리듬

정선에서의 하루는 도시의 루틴과 완전히 달랐다. 오전 6시에 해가 뜨기 시작하면 새소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눈을 뜨게 된다. 창밖에는 안개 낀 산등성이가 보이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개울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린다. 이른 아침 산책을 겸해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몸도 마음도 말갛게 정돈된다. 아침 산책 후 가벼운 아침 식사와 함께 노트북을 열면, 머릿속은 이미 정리된 상태다.

업무는 보통 오전 8시부터 집중해서 시작하고, 오전에는 영상 편집이나 복잡한 기획 작업 위주로 진행했다. 오후에는 외부 미팅이나 피드백 반영, 블로그 글 작성 등의 비교적 유연한 업무를 배치했다. 중간에 두 시간쯤은 외부로 나가 공기 좋은 찻집에서 책을 읽거나 간단한 자료를 정리하는 시간도 가졌다. 하루가 끝나면 근처에 있는 병방산 일몰 명소에 올라, 노을을 바라보며 천천히 하루를 정리했다. 자연 속에 있으니 억지로 힐링하려 애쓰지 않아도, 일상이 그 자체로 회복이 되었다.

 

정선, 디지털 노마드의 '피난처'가 될 수 있을까?

한 달간 정선에서 살아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외부의 소음이 사라질수록 내면의 집중력이 회복된다’는 사실이었다. 서울에서는 여러 자극이 끊임없이 몰려왔다. 모임, 광고, 업무 요청, 교통, 사람들. 하지만 정선에서는 그 자극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나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일의 방향성, 앞으로의 목표,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정선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심야에 배달음식 선택이 거의 없고, 차가 없다면 이동이 불편한 지역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불편함이 오히려 나를 더 건강한 루틴으로 이끌었다. 제시간에 자고 일어나며, 외식을 줄이고, 걷는 시간을 늘렸다. 디지털 노마드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일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과 ‘자신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정선은 이 두 가지를 조용히 제공하는 도시였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정선은 일시적인 여행지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피난처가 될 수 있는 곳이며,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조용함은 때로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정선은 그 조용함을 제대로 품고 있는 몇 안 되는 소도시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