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난 이유, 속초를 선택한 이유
디지털 노마드라는 라이프스타일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실행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나는 매일 아침 9시에 화상회의에 접속하고, 해외 클라이언트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프로젝트 마감일을 지키는 일상을 살아가는 1인 디지털 워커다. 서울 강남의 공유 오피스에서 시작했던 이 생활은 어느 순간 ‘소음’과 ‘혼잡’이라는 단어로 점철되었다. 지친 일상 속에서 ‘공간이 삶을 바꾼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찾게 된 도시가 강원도 속초였다.
속초는 흔히 ‘여행지’로만 인식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지털 노마드에게 꽤 괜찮은 근거지가 된다. 바다와 산이 공존하고, 주요 인프라가 부족하지 않으며, 서울과의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도 일정 기간 머물 수 있는 단기 숙소가 많고, 로컬 음식과 자연환경이 결합된 생활은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나는 거창한 계획 없이, 단지 “다른 공간에서 한 달만 일해보자”는 마음으로 속초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속초의 디지털 작업환경: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속초에서의 첫 3일은 사실 불안했다. 가장 걱정했던 건 인터넷 속도와 원격 회의 품질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우에 불과했다. 내가 머문 숙소는 교동에 위치한 원룸형 숙소였고, 속도 측정 결과 다운로드 330Mbps, 업로드 280Mbps로 매우 안정적이었다. Zoom 회의나 Google Meet을 통한 화상 미팅도 전혀 끊김 없이 가능했고, Slack, Notion, Trello 등 협업툴 사용에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오히려 '작업 공간'이었다. 숙소 책상이 좁고 의자가 불편했기 때문에, 며칠 후 나는 로컬 카페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속초에는 생각보다 노트북 사용이 가능한 카페가 많지 않다. 그러나 교동에 있는 ‘카페 마레’, 엑스포공원 근처 ‘테라로사’ 등은 공간도 넓고 콘센트가 많아 만족스러웠다. 한적한 평일 오후, 노트북을 켜고 커피 한 잔을 곁들이는 속초의 카페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디지털 노마드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소도시의 장점과 불편함, 그 솔직한 이중성
속초는 분명 매력적인 도시다. 퇴근 후 해변을 산책할 수 있고, 토요일 아침에는 중앙시장에서 오징어순대를 사 먹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자연과 가까운 삶은 분명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이다. 특히 나는 불면증이 심한 편인데, 속초에 머무는 동안은 새벽 2시에 자도 아침 8시에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불편한 점도 있었다. 늦은 밤 배달 음식의 선택지가 적고, 프린트하거나 스캔할 일이 생기면 문구점이나 사무기기를 다루는 공간을 찾기 어렵다. 택배를 받을 때도 특정 시간대에만 수령 가능하거나, 위치상 도보로는 접근이 힘든 곳에 물류 거점이 위치한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외로움’이다. 소도시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주는 문화가 잘 없기 때문에,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일만 하다 보면 어느새 고립감을 느끼기도 한다.
디지털 노마드에게 속초는 가능성 있는 도시인가?
나는 속초에서 한 달을 살아보며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공간이 삶을 바꾼다’는 말은 단순한 감성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야기다. 하루 일과가 끝난 뒤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일에 대한 회복력이 생겼고, 자연과 가까운 리듬 속에서 나는 더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속초가 디지털 노마드의 천국은 아니다. 복잡한 팀 작업이나 자주 이동해야 하는 비즈니스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인 중심의 원격근무자, 창작자, 프리랜서에게는 충분히 기능적인 도시다. 특히 기존 일상을 리셋하고 싶은 사람에게, 속초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오래된 숙제를 풀어줄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다. 속초는 ‘은퇴한 도시’가 아닌,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도시’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실제로 경험해 보기 전까진 절대 알 수 없다. 나는 속초를 떠나 서울로 돌아왔지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리라는 직감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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