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

월세 15만원, 강진 시골집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일해보니 생긴 변화들

newstart137 2025. 7. 9. 12:30

서울 생활의 한계를 느낀 어느 날, 나는 강진으로 향했다

서울 강북의 1.5룸 오피스텔에서 80만 원짜리 월세를 내며 재택근무를 해오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공간이 더 이상 나를 위한 공간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됐다. 탁 트인 창문 하나 없는 집, 24시간 들리는 도로 소음, 주말에도 쉴 틈 없는 온라인 회의와 메신저 알림. 화면 속 일은 자유롭지만, 물리적 환경은 답답하기만 했다.

 

월세 15만원 강진 시골집에서 디지털 노마드 생활

 

그렇게 도심 밖 대안을 찾던 중, 우연히 전라남도 강진군에 단기 월세로 나온 시골집 정보를 보게 되었다. 사진 속 낡은 초록색 지붕, 마당 한편에 놓인 감나무, 그리고 ‘월세 15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 적힌 소개글.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딱 한 달만 살아보자는 결심으로 노트북과 외장하드, 멀티탭 하나를 챙겨 강진으로 향했다. 수도권을 떠나 한적한 시골마을로 들어간 그 순간부터, 나의 하루는 조용히 그리고 분명히 변하기 시작했다.

 

작업환경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다

도착한 집은 마을 끝자락에 자리 잡은 30년 된 단층주택이었다. Wi-Fi는 없었지만, SKT LTE 속도는 충분히 빨랐고, 핫스팟 연결을 통해 Zoom 화상회의와 대용량 업로드도 무리 없이 가능했다. 초기에는 인터넷이 불안할까 봐 우려했지만, 오히려 서울 자취방에서보다 끊김이 덜했고, 알림도 적으니 훨씬 집중도가 높았다.

집 안에는 오래된 나무 책상이 하나 있었고, 주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침 7시에 눈을 떠 대충 세수하고 책상에 앉으면, 오전 8시부터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됐다. 회의, 클라이언트 이메일 확인, 블로그 초안 작성, 마케팅 콘텐츠 기획까지. 특히 강진에 머무는 동안 작성한 콘텐츠 초안들은 유난히 몰입도가 높았고, 클라이언트 피드백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며 새삼 깨달은 건, ‘좋은 환경이란 고급 사무실이나 빠른 커피머신이 아니라, 잡음 없는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마을에는 오직 바람 소리, 새소리, 그리고 멀리 밭일하는 어르신들의 웃음소리만 존재했다. 나는 이 조용한 공간 속에서 오히려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이상한 동기를 매일 느꼈다.

 

불필요한 루틴이 사라지니 진짜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지쳐 있었다. 씻고, 옷을 입고, 출근하듯 책상에 앉기까지 수많은 루틴이 있었고, 그 대부분이 피곤했다. 그러나 강진에선 달랐다. 대충 머리를 말리지 않아도,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있어도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고, 나 역시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외모나 겉치레에 들어가던 에너지가 오롯이 본질적인 일에 집중되자, 예상보다 많은 작업물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강진에서의 생활은 매 식사마다 나를 건강하게 만들었다.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 집밥을 해 먹으니 자연스럽게 식비도 줄고, 가공식품 섭취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저녁엔 마당에 걸터앉아 고구마를 굽거나, 근처 개울가를 따라 산책을 하며 하루를 정리했다. 서울에선 불면에 시달리던 내가, 강진에서는 새벽 1시를 넘기기 전에 자연스럽게 잠이 들었다.

무엇보다 컸던 변화는 ‘욕망이 줄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옷, 맛집, 인스타 사진, 비교와 소비.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나니, 나 자신이 조금 더 단순해졌고, 그 단순함이 나를 더 명료하게 만들었다. ‘나답게 산다는 건 뭘까’라는 오래된 질문의 답을 강진의 조용한 마을에서 조금은 찾은 것 같았다.

 

도시는 떠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깨달음

한 달이 지난 후,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강진에 연락했다. 이번엔 한 달이 아닌 ‘6개월’을 고민 중이었다. 강진에서의 생활은 단지 비용이 저렴해서가 아니라, 삶의 밀도를 바꿔주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울이 아니면 일 못 하지 않냐”고 묻지만, 나는 오히려 묻고 싶다. “서울에서 제대로 일하고 있는 건 맞나요?” 일은 어디서든 가능하다. 진짜 중요한 건 내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인가, 아닌가의 문제다.

강진에서의 한 달은 나에게 그걸 깨닫게 해줬다. 시골집의 낡은 장판, 비 오는 날의 천장 물방울 소리, 느린 시계 바늘 소리. 이 모든 것이 나를 더 깊은 몰입으로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작업 결과로 이어졌다. 월세 15만 원짜리 시골집은 단지 ‘저렴한 공간’이 아니라, 내 삶의 속도를 다시 조절할 수 있는 리셋 공간이었다.

도시는 때때로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돌아올 이유도 생긴다. 나처럼 번아웃이 찾아왔거나,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느낀다면, 잠깐이라도 강진 같은 조용한 시골에서 살아보기를 권한다. 공간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결국 삶이 달라진다. 나는 그것을 월세 15만 원짜리 강진 시골집에서 분명하게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