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갖췄는데, 왜 만족하지 못했을까
서울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나는 겉보기에 부족한 게 없어 보였다. 일은 끊이지 않았고, 수입은 꾸준히 증가했고, 이름 있는 브랜드와의 협업도 늘어갔다. 오전엔 성수동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오후엔 회의에 참석했고, 밤이면 피드백을 처리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허전했고, 몸은 계속 고장 신호를 보냈다. 어깨 통증, 수면장애, 불규칙한 식사, 잦은 피로감. 그 모든 건 번아웃의 전조였고, 나는 매일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걸까?’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어느 날, 멀리 떠나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이 필요했다기보단, 이 도시의 흐름에서 벗어나야 내 리듬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소도시 체류. 처음엔 한 달만 있다 오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서울을 떠나 소도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삶의 질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첫 번째 변화: 일과 삶의 분리, 진짜 ‘퇴근’을 되찾다
서울에서는 늘 일과 삶이 섞여 있었다. 회의가 끝나도 카톡은 계속 울렸고, 주말에도 메일은 수시로 확인했다. 카페에 가도 노트북을 켰고, 식사 중에도 업무 대화를 이어갔다. 퇴근은 없었고, 늘 일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강원도 정선으로 한 달 살이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하루의 경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전 7시에 눈을 뜨고 산책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고, 오전 9시부터 집중 업무를 시작해 오후 5시면 노트북을 닫았다. 해가 지면 산책을 하거나 요리를 하고, 그 시간이 지나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이 리듬이 반복되자 자연스럽게 ‘퇴근하는 감각’이 몸에 새겨졌다. 더 많이 일하지 않아도, 더 잘 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업무 효율은 오히려 높아졌고, 정해진 시간 내에 집중해서 끝내는 법을 배우면서 남는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서울에서는 일을 끝낸 후에도 ‘뭔가 더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이 있었지만, 소도시에서는 일 이외의 시간에도 내가 살아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건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오랜만에 느낀 나 자신의 회복이었다.
두 번째 변화: 더 적게 쓰고, 더 많이 느끼는 삶
서울에서는 비용이 늘 불안 요소였다. 월세, 교통비, 외식비, 커피값, 공유오피스 이용료. 프리랜서라 고정 수입이 아닌 나에겐 생활비 자체가 압박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 더 일해야 했다. 하지만 지방 소도시로 이주하면서, 고정비가 크게 줄었다.
강진에서의 월세는 15만 원, 봉화에서의 한 달 식비는 20만 원도 들지 않았다. 택시는 거의 탈 일이 없었고, 도보 생활이 기본이었다. 마트 대신 시장에서 장을 보며 요리하는 재미도 생겼고, 매일 카페에 가야만 집중이 됐던 서울과 달리, 집에서 일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더 적게 써도 전혀 결핍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둘러싼 요소들이 단순해지자 작은 변화에 민감해졌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일렁였다. 마을 어르신의 인사, 나무에 핀 꽃, 계곡물 소리, 마당에서 책 읽는 시간. 서울에서는 돈을 내야 겨우 얻을 수 있던 것들이, 여기선 자연스레 주어졌다.
이건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었다. 감각의 회복, 삶의 감도 상승,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감사가 늘어난 것이었다. 나는 더 많이 소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진짜 삶의 질은 속도가 아니라 밀도에서 나온다
서울을 떠나면서 깨달은 가장 큰 진실은 이것이다. 삶의 질은 빠른 속도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삶의 밀도, 나와 내가 하는 일 사이의 관계, 나와 내가 사는 공간 사이의 정서적 연결이 깊을수록 삶은 더 풍부해진다.
지금 나는 여전히 일한다. 클라이언트와 화상 회의를 하고, 콘텐츠를 제작하고, 마케팅 전략을 짜며 바쁘게 지낸다. 하지만 그 안에 조급함이 없다. 더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감각, 그리고 하루 중 일부는 ‘나를 위한 시간’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식이 생겼다.
서울에서는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가치 있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있다는 걸 안다. 이곳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도 덜 외롭고, 일하지 않는 시간도 덜 불안하다.
결국, 디지털 노마드의 진짜 삶의 질이란 ‘어디서 일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을 떠나 나는 더 좋은 집에 살게 된 것도, 더 많은 돈을 벌게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더 나답게 살고 있고, 그게 나에게는 최고의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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