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

서울을 떠나 얻은 것들 : 디지털 노마드의 진짜 삶의 질

newstart137 2025. 7. 16. 13:00

모든 걸 갖췄는데, 왜 만족하지 못했을까

서울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나는 겉보기에 부족한 게 없어 보였다. 일은 끊이지 않았고, 수입은 꾸준히 증가했고, 이름 있는 브랜드와의 협업도 늘어갔다. 오전엔 성수동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오후엔 회의에 참석했고, 밤이면 피드백을 처리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서울을 떠나 얻은 디지털 노마드의 삶의 질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허전했고, 몸은 계속 고장 신호를 보냈다. 어깨 통증, 수면장애, 불규칙한 식사, 잦은 피로감. 그 모든 건 번아웃의 전조였고, 나는 매일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걸까?’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어느 날, 멀리 떠나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이 필요했다기보단, 이 도시의 흐름에서 벗어나야 내 리듬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소도시 체류. 처음엔 한 달만 있다 오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서울을 떠나 소도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삶의 질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첫 번째 변화: 일과 삶의 분리, 진짜 ‘퇴근’을 되찾다

서울에서는 늘 일과 삶이 섞여 있었다. 회의가 끝나도 카톡은 계속 울렸고, 주말에도 메일은 수시로 확인했다. 카페에 가도 노트북을 켰고, 식사 중에도 업무 대화를 이어갔다. 퇴근은 없었고, 늘 일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강원도 정선으로 한 달 살이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하루의 경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전 7시에 눈을 뜨고 산책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고, 오전 9시부터 집중 업무를 시작해 오후 5시면 노트북을 닫았다. 해가 지면 산책을 하거나 요리를 하고, 그 시간이 지나면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이 리듬이 반복되자 자연스럽게 ‘퇴근하는 감각’이 몸에 새겨졌다. 더 많이 일하지 않아도, 더 잘 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업무 효율은 오히려 높아졌고, 정해진 시간 내에 집중해서 끝내는 법을 배우면서 남는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서울에서는 일을 끝낸 후에도 ‘뭔가 더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이 있었지만, 소도시에서는 일 이외의 시간에도 내가 살아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건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오랜만에 느낀 나 자신의 회복이었다.

 

두 번째 변화: 더 적게 쓰고, 더 많이 느끼는 삶

서울에서는 비용이 늘 불안 요소였다. 월세, 교통비, 외식비, 커피값, 공유오피스 이용료. 프리랜서라 고정 수입이 아닌 나에겐 생활비 자체가 압박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 더 일해야 했다. 하지만 지방 소도시로 이주하면서, 고정비가 크게 줄었다.

강진에서의 월세는 15만 원, 봉화에서의 한 달 식비는 20만 원도 들지 않았다. 택시는 거의 탈 일이 없었고, 도보 생활이 기본이었다. 마트 대신 시장에서 장을 보며 요리하는 재미도 생겼고, 매일 카페에 가야만 집중이 됐던 서울과 달리, 집에서 일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더 적게 써도 전혀 결핍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둘러싼 요소들이 단순해지자 작은 변화에 민감해졌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일렁였다. 마을 어르신의 인사, 나무에 핀 꽃, 계곡물 소리, 마당에서 책 읽는 시간. 서울에서는 돈을 내야 겨우 얻을 수 있던 것들이, 여기선 자연스레 주어졌다.

이건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었다. 감각의 회복, 삶의 감도 상승, 그리고 일상에 대한 감사가 늘어난 것이었다. 나는 더 많이 소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진짜 삶의 질은 속도가 아니라 밀도에서 나온다

서울을 떠나면서 깨달은 가장 큰 진실은 이것이다. 삶의 질은 빠른 속도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삶의 밀도, 나와 내가 하는 일 사이의 관계, 나와 내가 사는 공간 사이의 정서적 연결이 깊을수록 삶은 더 풍부해진다.

지금 나는 여전히 일한다. 클라이언트와 화상 회의를 하고, 콘텐츠를 제작하고, 마케팅 전략을 짜며 바쁘게 지낸다. 하지만 그 안에 조급함이 없다. 더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감각, 그리고 하루 중 일부는 ‘나를 위한 시간’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식이 생겼다.

서울에서는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가치 있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있다는 걸 안다. 이곳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도 덜 외롭고, 일하지 않는 시간도 덜 불안하다.

결국, 디지털 노마드의 진짜 삶의 질이란 ‘어디서 일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을 떠나 나는 더 좋은 집에 살게 된 것도, 더 많은 돈을 벌게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더 나답게 살고 있고, 그게 나에게는 최고의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