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

경북 봉화에서 일한 30일 기록: 자연 속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다

newstart137 2025. 7. 12. 07:30

서울을 떠나, 조용한 산골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서울에서 콘텐츠 마케터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8년. 일은 점점 많아졌지만, 몰입은 점점 줄어들었다. 매일 반복되는 회의, 계속 울리는 알림, 머릿속은 항상 복잡했고, 결국 하루를 마쳐도 뿌듯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일하고 있는 게 맞을까?"라는 자문 끝에, 문득 조용한 자연 속에서 한 달간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북 봉화 자연 속 디지털 노마드 기록

 

지도를 펼쳐 가장 눈에 띈 곳이 바로 경상북도 봉화군이었다. 봉화는 인구 3만이 채 되지 않는 내륙 산간 지역으로, 백두대간 줄기에 둘러싸인 조용한 도시다. 서울에서 KTX와 버스를 통해 약 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이름은 익숙하지 않지만 귀촌·귀농 1순위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숙소를 예약했고, 그렇게 봉화에서의 30일이 시작되었다.

 

디지털 워크, 산골에서도 가능한가? 봉화의 업무 환경

처음 봉화로 내려갈 때 가장 걱정했던 건 단연 인터넷 연결이었다. 내가 선택한 숙소는 봉화읍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작은 민박 형태의 단독주택이었다. 이곳은 와이파이가 없었고, LTE 테더링이 유일한 인터넷 수단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SKT 기준 다운로드 40Mbps, 업로드 15Mbps로 충분히 업무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줌 회의, 드라이브 업로드, 채팅 기반 협업까지 모두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작업 공간은 숙소 내부의 원목 테이블을 그대로 활용했다. 해가 잘 드는 창가였고, 창문을 열면 바로 산의 초록빛이 보였다. 자연이 주는 배경은 시끄러운 배경음보다 훨씬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카페는 가까운 읍내의 ‘봉화커피’, ‘카페 초록마루’ 등을 가끔 이용했는데, 조용하고 노트북 사용에 제약이 없어 매우 유용했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분명했다.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봉화에서도 도심 못지않은 집중력과 작업 효율을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불필요한 외부 자극이 없으니, 콘텐츠 기획이나 글쓰기 같은 창의적 작업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봉화에서의 하루 루틴,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

봉화에서의 하루는 서울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흐름으로 흘러갔다. 아침 6시 30분에 새소리로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근처 계곡을 따라 짧게 산책을 한 후 7시 30분이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전 11시까지는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대였고, 이 시간에 주로 콘텐츠 기획, 원고 작성, 영상 편집 같은 고집중 작업을 몰아서 처리했다.

점심은 읍내의 로컬 식당을 주로 이용했다. ‘봉화 한우국밥’, ‘산골백반집’ 같은 식당은 평균 7,000~8,000원이면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산책로를 걷는 게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오후에는 비교적 루틴한 업무를 수행했다. 회의록 정리, 클라이언트 피드백 반영, 메일링 업무 등이다.

퇴근 후에는 늘 봉화의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분천역 산책길, 청량산 자락,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 등 걷기만 해도 회복이 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선 일과 여가가 분리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일을 했으면 쉬어야 한다’는 당연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일의 속도보다 중요한 건, 나의 리듬이었다

30일 동안 봉화에서 머무르며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속도의 변화’였다. 서울에선 언제나 빨라야 했고, 멀티태스킹이 당연했다. 하지만 봉화에선 느린 리듬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이고, 일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이메일 회신을 몇 분 늦게 보낸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더 중요한 건 하루의 에너지를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불편함도 있었다. 급한 출력이 필요할 땐 프린터가 없어 읍내 PC방을 찾아야 했고, 야간에는 배달 음식이 거의 없었다. 차량 없이 이동이 불편했던 점도 있었지만, 그 덕분에 산책과 집밥이라는 건강한 루틴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 불편함 속에서 얻게 된 건 단순한 업무 효율을 넘은, 삶의 균형감이었다.

돌아보면 봉화에서의 30일은 단순한 한달살기가 아니었다. 무너진 루틴을 회복하고, 생각의 방향을 정리하고, 일의 본질을 다시 고민하게 된 시간이었다. 디지털 노마드로 산다는 것은 결국, 어디서든 내가 나답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봉화는 그 조건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제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