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

구례 한달살기: 한적함과 디지털 워크가 공존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

newstart137 2025. 7. 10. 13:00

‘조용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의 끝에서 찾은 도시, 구례

서울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지 8년째가 되던 해,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싶진 않았지만, 이 환경에서 더는 창의적인 결과물을 낼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카페를 전전하며 노트북을 열었지만 집중은 되지 않았고,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사람 없는 곳에서, 조용하게, 나만의 속도로 일해볼 수는 없을까?’

한적함과 디지털 워크가 공존하는 구례에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

 

그렇게 전국 지도를 펼쳐놓고 찾은 곳이 전라남도 구례군이다. 구례는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작은 군 단위 지역으로, 인구는 2만 명 남짓에 불과하다. 그만큼 상업화가 덜 되어 있고, 자연과 조용함, 저렴한 생활비를 모두 갖추고 있는 지역이었다. 특별한 마케팅도, 유행도 없었기에 디지털 노마드로서 체류형 삶을 실험해보기엔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나는 짐을 싸서 구례로 향했고, 그렇게 나의 ‘한 달살기’가 시작되었다.

 

구례의 인터넷 환경과 업무 공간: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시골에서 가장 걱정되는 건 인터넷 속도와 디지털 업무 환경이다. 구례에 도착했을 때, 내가 머문 곳은 구례읍 외곽의 단독주택이었다. 월세는 18만 원으로 매우 저렴했고, 1개월 단위 단기 임대가 가능했다. 처음엔 인터넷 회선이 없었지만, SKT LTE 기반 핫스팟 연결로 평균 다운로드 40Mbps, 업로드 15Mbps를 기록했다. 줌 회의, 클라우드 기반 협업툴 사용 모두 가능했다.

작업 공간으로는 집 안의 거실 테이블을 사용했고, 장시간 앉기 위해 간이 등받이와 쿠션을 따로 구매해 활용했다. 구례 읍내에 있는 ‘구례공공도서관’은 무료 와이파이와 조용한 좌석 공간이 있어 집중 작업에 유용했다. 또한, ‘구례5일시장’ 인근에 위치한 ‘카페 수미’는 노트북 사용이 자유롭고, 콘센트가 다수 마련되어 있어 디지털 워커들에게 추천할 만한 공간이었다.

가끔 외부 미팅이나 클라이언트 전화가 길어질 때는 자동차 안을 간이 오피스로 활용하기도 했다. 구례에는 차량 소음이 거의 없어 차 안에서 장시간 통화나 노트북 작업도 무리 없이 가능했다. 결국 ‘인터넷만 되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디지털 노마드의 본질을, 이곳 구례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루틴이 가져다준 깊은 몰입

구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하루의 리듬이 자연에 맞춰진다는 점이었다. 해가 뜨면 눈을 뜨고, 해가 지면 하루를 정리한다는 단순한 구조가 오히려 집중력과 효율성을 높여줬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마당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근처 지리산 둘레길 일부 구간을 20분 정도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시간이 머릿속을 정리하고 오늘의 업무를 계획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업무는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대에 기획서 작성, 블로그 콘텐츠 구성, 뉴스레터 초안 등의 핵심 업무를 처리했다. 점심은 대부분 현지 식당에서 해결했다. ‘가정식 백반’이 8천 원 정도면 충분했고, 반찬이 다양해 장기 체류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후에는 카페나 도서관으로 이동해 가벼운 피드백 정리나 이메일 업무를 진행했다.

저녁 무렵엔 구례 섬진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며 하루를 정리했다. 구례에서 보낸 이 루틴은 정신적인 번잡함을 줄이고, 하루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 서울에서는 끝나지 않던 업무가 구례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깔끔하게 정리되는 경험이 반복되었고, 자연 속에서 일하는 것이 단순한 감성 코드를 넘어서 생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용한 구례, 디지털 노마드의 다음 거점이 될 수 있을까?

한 달 동안 구례에서 살아보며 얻은 결론은 분명했다. 구례는 디지털 노마드에게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지역이다. 인터넷만 되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시대에, 굳이 비싼 서울 오피스텔에 머물며 번아웃을 겪을 필요는 없다. 조용함, 자연, 저렴한 물가, 넓은 작업 공간, 그리고 느긋한 사람들. 이 모든 조건이 몰입 중심의 디지털 워크를 가능하게 해주는 환경이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택배 배송이 하루 이틀 더 걸릴 수 있고, 야간에는 배달 음식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차가 없으면 대중교통으로는 이동이 불편한 구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오히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계획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했다.

구례는 당신에게 힐링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당신의 일을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그 조용함 속에서 당신의 일, 생각, 감정이 정리되기 시작할 것이다. 만약 지금 복잡한 도심에서 지쳐 있다면, 구례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쉼과 집중의 균형'을 선물할 수 있는 곳이다. 다음 한 달살기 목적지를 고민 중이라면, 구례는 반드시 리스트에 올려야 할 이름이다.